후출사표 後出師表
동남풍을 기다리며
이제 신은 엎드려 몸을 바치고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할 뿐이오니,
일의 성패와 이해에 대하여서는
신이 미리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2024년을 돌아보며
다른 분들처럼 12월 복기 또는 2024년 복기를 쓰려고 했으나, 쓰다 보니 또 기승전하이퍼리퀴드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모두 지우고 다시 작성합니다. 2024년 복기는 짧게 마치고 넘어가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상반기 미니 불장이 끝나기 전에 퇴사를 해서 잠시나마 밈코인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었고, 그 수익을 모두 뱉어낸 후에는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어서 하이퍼리퀴드가 스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미친듯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귀찮아서 무시하고 지나쳤을텐데 말이죠. 또 여름과 가을, 반년 간의 지루한 시장 동안에는 감사하게도 훌륭한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잊기 쉬운 일들이니 연말을 맞아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동남풍이 분다’ 텔레그램 채널 이야기도 뺄 수 없겠네요. 저와 제 친구들이 각자 흥미 있는 것들을 올리는 취미 채널에 불과한데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다른 채널 운영자 분들처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서 글을 자주 쓰지도 않고 돈이 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기본적으로 흥미가 잘 생기지 않는 사람인데 흥미가 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보니 아비트라지, 에드작, 디파이 파밍 등은 거의 하질 않습니다. 저는 잘될 것 같은 친구를 발견하면 깊게 파고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빚 밖에 없을 때도 이랬던 놈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투자를 복기해보면, 하이퍼리퀴드를 제외하고 3월 퇴사 이후 413.3%의 수익률을 거뒀습니다. 밈코인과 AI 에이전트 메타에 확신을 가지고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현물 투자만으로 비트코인 상승률은 상회했으니 만족해야겠습니다. 사실 하이퍼리퀴드는 TGE 전에 너무 마인드쉐어가 낮았기에 연말까지 하이퍼리퀴드의 FDV가 $10B을 넘기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시장의 평가가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1티어 거래소의 현물 상장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EVM 레이어도 출시하지 않아 여기서 여정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아직 사이클 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서 조금 더 욕심 내볼까 합니다. 연말 휴가 기간 동안 오래 생각했는데, 잘 풀리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2025년을 기대하며: 동남풍은 아직 불지 않았다
사실 23년 4분기부터 비트코인과 알트코인들의 가격 차트를 보면 ‘아직 사이클이 끝난게 아니라고?’ 충분히 의심하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의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동남풍이 불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미국의 정책 기조 완화
올해 텔레그램 채널에서 수차례 언급했었지만, 이번 미국 대선은 크립토에 한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였습니다. 미국은 지난 바이든 정권 동안 'Chokepoint 2.0'을 필두로 크립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왔습니다. LUNA와 FTX, Celsius, 3AC등도 업계에 큰 타격을 주긴 했으나, 미국 민주당이 달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은행 자금줄을 옥죄고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광범위하게 미등록 증권 판매/중개업 딱지를 붙이며 소송전을 벌인 것은 4년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업계의 제도권 편입을 완전히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공식적으로 전면금지를 한 상황에서 가장 큰 손이자 헤게모니의 리더인 미국에서 이런 조치가 취해진 것은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당장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모든 것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크립토가 발할라로 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내뱉은 말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니까요. 그러나 백악관, 상원, 하원, 심지어 연방대법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한 것, 그리고 트럼프 내각 인사들이 전반적으로 친크립토 인사들이라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디파이 프로젝트를 런칭한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적어도 바이든처럼 시장에 재 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2) 스테이블코인 발행량
스테이블코인은 크립토 시장의 혈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달러 기준으로 가격 안정성을 제공해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이낸스, OKX, 바이빗 등 대형 역외 거래소의 기축 통화이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아무리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들, 결국 가격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시가총액이 아니라 얼마만큼 받아줄 유동성이 있느냐죠. 밈코인이 크게 펌핑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시가총액이 아니라 유동성의 크기'라고 고래들이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은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신규 유동성이 수혈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이 충분한 유동성 공급 없이 왜곡된 상태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스테이블코인 공급량은 어떨까요? 2024년 말 기준 스테이블코인 공급량은 2021년 최고점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USDT로의 쏠림 현상이 심한 상태입니다. 또 크립토 전체 시가총액 대비 USDT와 USDC의 합산 발행량 비중은 5.8% 수준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으며, 2021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차이난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즉, 2021년 대비 신규 유동성이 많이 수혈되지 않았고, 그나마 수혈된 유동성마저 암시장 달러인 USDT가 대부분이며, 시장이 저평가 국면을 벗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객관적으로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자체로 숫자일 뿐, 해석에 따라 결론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먼저, 현물 ETF의 등장 이후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스테이블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단적인 예로 현물 ETF가 존재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크립토 전체 시가총액(TOTAL3) 대비 스테이블코인 발행량 비중은 2021년 대비 낮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주식시장을 통해 실제 달러로 매수되는 비트코인/이더리움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며, 적어도 알트코인에 한해서는 고평가 국면에 들어서지 않았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 USDC의 저조한 발행량과 USDT의 발행량 급증은 Chokepoint 2.0으로 인한 미국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어려움, 그리고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한 미국 외에서의 달러 수요 증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암시장 달러로는 한계가 있으니 미국산 진짜 달러가 시장에 주입되어야 할텐데, 이는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미국 주체들이 USDC, PYUSD 등을 통해 크립토 시장에 유동성을 투입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국이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아직 제대로 된 스테이블코인 유동성 수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3) 코인베이스 앱 랭킹
마지막은 앞선 두 가지보다 근거가 빈약하지만 개인적으로 설정한 고점 시그널입니다. (함께 고점 신호로 잡고 있는 서클 IPO는 생략하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백악관과 블랙록이 크립토를 미는데 코인베이스가 앱 랭킹 1위를 한번도 찍지 못하고 사이클이 끝난다면 이 업계에 미래는 없습니다.
기반이 미약했던 2017년과 2021년에도 코인베이스는 버블의 최정점에서 앱스토어 전체 1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정치 권력과 금융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두 인물이 미국에서 크립토를 키우고 싶다고 밝혔는데, 코인베이스가 앱스토어 1위를 하지 못할까요? 코인베이스가 앱스토어 전체 1위를 찍지 못한다는 것은 크립토에 대한 리테일의 관심이 이전만 못하다는 뜻이고, 이는 결국 크립토 시장의 가파른 성장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믿습니다".
동남풍이 불지 않는다면?
만약 2025년에 동남풍이 불지 않고, 2024년 12월 비트코인 $108K가 사이클 탑이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 불투명한 국제 정세
정치/경제적인 양극화로 인한 국가 내 대립과 국가 간 무력 충돌이 잦아들면서 탈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탈세계화의 흐름이 가속화될수록 블록체인이 주는 무신뢰성 송금 및 거래의 가치가 높아지겠으나,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 성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중국의 대만 침공이 2025년에 개시된다면 반도체 공급 쇼크로 인해 전세계 물가에 엄청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세계 대전 확전 우려로 엄청난 쇼크가 발생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2) MiCA로 인한 USDT 되감기
EU의 MiCA 규제로 인해 유럽의 시장 참여자들은 2025년부터 허가받지 않은 스테이블코인인 USDT를 취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래대금 비중이 높지 않은 지역이고 대형 거래소들은 몇 달 전부터 정리 작업에 들어가서 당장 큰 타격이 있진 않겠으나, 유럽을 본진으로 두고 있는 크립토 기업들이 상당수 있기에 일부 소동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가장 영향력이 클 유럽 기반 트레이딩 회사들은 이미 모든 대비를 마쳤을 것으로 개인적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이 USDC 발행량 증가의 촉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크립토 시장에 대한 불신
2017~2018년 사이클이 일반 대중에게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투기심을 자극했다면, 2020~2021년은 디파이/NFT/메타버스/P2E 등을 바탕으로 블록체인의 세상이 정말 온다는 희망을 자극하는 시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오징어게임 2에서 볼 수 있듯, 크립토는 지금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신규 시장 참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틱톡 밈으로 대표되는 솔라나 밈코인 광기가 성공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최근 가장 핫한 트렌드인 AI와 블록체인의 궁합이 나쁘지 않아보인다는 점이네요. 가장 예상하기도 어렵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위험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동남풍을 누구보다 바라지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 시장 상황에 맞춰 계속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다각도로 봤을 때 시장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면 고점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야겠죠.
‘아직 사이클 탑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제가 현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고, 결과가 좋지 않다면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확신을 가졌습니다. 투자는 본질적으로 확률에 대한 베팅이고, 그 확률은 다양한 근거를 기반으로 개개인이 설정합니다. 본문도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각자의 판단에 따라 투자 결정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2024년 고생 많으셨고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루시는 2025년이 되셨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