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出社表
결국 퇴사했습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
삼국지를 세 번 읽은 미친 놈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지만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천하의 패권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면서도, 결국 누구 하나 끝내 승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특이하게도 삼국지 좋아하는 사람 치고 좋아하는 인물이 겹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누구는 유비 좋아하고, 누구는 조조 좋아하고, 누구는 제갈량 좋아하고, 백인백색이다. (참고로, 손권 좋아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게 좋다) 이는 똥볼 차는 놈이 명확히 보이는 초한지나 지나치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개성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수호지에 비해 삼국지가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는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삼국지 좋아하는 놈이 글 제목을 출사표라고 지은 것은 스스로 제갈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잘 쳐줘야 간손미에 가깝지 않을까? 필자는 2017년에 이더리움 대신 이오스에 투자했고, 2021년 불장 한가운데에서 크립토 리서치를 업으로 삼았음에도 졸업하지 못한 미천한 middle IQ에 불과하다. 다만, 망국의 운명이 뻔히 보이면서도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천자에게 상소했던 공명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는 점에서 이렇게 건방진 제목을 짓게 되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특히 회사 일에 매몰되다 보니 정말 좋아하던 크립토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었고, 가까운 친구들과 트렌드 얘기를 할 때마다 과거의 지식에 얽매여 구태 지식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과 크립토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지 않고 퇴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다름 아닌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이신 주혁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던 “개개인이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는 말 때문이었다. 얼마 전 침착맨 방송에서 송길영 박사님 역시 “핵개인의 시대가 온다”며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소셜 미디어와 AI의 도래로 인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결국 딱 3개월만 내 생각을 세상에 알려보고 그 다음에 미래를 생각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럼에도 잘 다니던 직장에서 다음 스텝을 생각하지 않고 퇴사하는 것은 마지막까지도 상당히 괴로운 결정이었다. 유비가 이릉대전으로 촉나라의 운명을 끝내버렸듯, 필자 또한 훗날 퇴사를 결정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동남풍이 분다고 판단한 이상, 초심을 되찾고 필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돌이켜보면 2017년 비트코인은 스캠과 다를 바 없었다. 유명한 마약쟁이 할아버지가 원색적인 발언을 일삼고, 웬 아역배우 출신이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이더리움 킬러를 만든다고 나섰고, 듣도보도 못한 중국인들이 나타나 자존심을 건 펌핑을 시작했다. 그 당시 비트코인의 위대함을 주변에 설파하려면 절망적인 TPS에 입이 막히고 이더리움은 유즈 케이스로 크립토키티를 보여주면서 부끄러워 해야 했다.
2021년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세계 최대 부자가 숨쉬듯 비트코인과 개코인을 쉴링했고, 빅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의 미래를 부르짖고, 디파이와 NFT라는 더 나은 유즈 케이스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친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며, 일반 대중에게 블록체인 프로덕트들은 그저 버블에 탑승하고자 하는 투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2024년이 됐다. 소위 ‘Bad player’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여전히 일부 존재하긴 한다), 음모론 필수 소재인 세계 최대 금융회사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발행했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입에서 디지털자산이 거론되고 각국은 규제 도입에 여념이 없다. 2017년 대한민국 정부가 코인을 금지하려고 하고, 2021년 중국 정부가 코인을 금지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다.
코인, 또는 디지털자산, 또는 크립토는 이제 금지하고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산군이 된 것이다.
왜 크립토인가
필자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그렇게까지 코인을 좋아하냐’는 것이다. 변동성이 높아서? 탈중앙화를 원해서? 기술이 흥미로워서?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크립토에 가장 흥미가 있는 부분은 ‘개인이 VC처럼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령, 필자가 크립토 이외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선진국의 고령화와 저출산이다. 전세계 명목 GDP의 80% 이상을 Top 20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들 중 대다수의 국가들은 이미 경제 성장이 둔화된 선진국으로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문제에 직면했고, 이에 따라 임플란트, 피부 미용, 수명 연장 등의 의료 기술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일반 개인 입장에서 관련 기업에 투자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다수의 기업들이 비상장 기업이고 개인이 기업의 재무 및 사업 현황을 실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정보와 자본 투입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립토는 다르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정보와 자본 투입의 비대칭성은 개인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다.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누구나 원하는 온체인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하고 실제 투자에 접목해볼 수 있다. A 코인이 생태계의 확장 없이 차트만 상승하고 있는지, B 코인이 C 코인보다 지나치게 고평가된 것은 아닌지 누구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가설을 세울 수 있고, 확신이 생긴다면 지체 없이 개인 지갑으로 해당 자산을 거래할 수 있다. 필자에게는 이만큼 매력적인 자산이 없다.
혹자는 내실을 다지지 않고 가격만 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좋든 싫든 이미 최근의 자산 시장은 모두 그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21년 이후 테슬라의 실적이 좋아짐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가? 에코프로는 이차전지를 독점해서 주가가 상승했는가? 대한민국 부동산은 그만큼의 가치를 지녀 폭등했었는가? 각자의 위험 선호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답을 내리고 적합한 자산군에 투자하면 될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철저히 개인투자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현재의 블록체인 산업이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라는 짧은 백서에서 시작되었듯, 블록체인 자산은 내재적으로 개인 간 거래를 지향하는 P2P 자산군이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크립토 자산은 타 자산군에 비해 여러 부문에서 우월한 자산일 수 밖에 없다. 검열 저항성, 완결성, 뭐 이런 어려운 말을 쓸 필요도 없이 크립토 자산만큼 누구나 간단하게 소액으로 높은 변동성을 누릴 수 있는 자산은 없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업비트에서 단타 치고 바이낸스에서 선물 거래하는 일반 투자자들과 뭐가 다르기에 이렇게 긴 글을 썼냐고 반문할 수 있다.
동남풍이 분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와 그에 이은 이더리움 현물 ETF 신청은 이제 더 이상 정부에서 크립토를 죽일 수 없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그 전까지 코인을 싫어하던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던 주장 중 하나가 ‘언제 정부에서 금지할지 모른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특히 약세장 동안 업계에 몸 담으셨던 분들은 마음 속 한구석에서 ‘이러다 우리 다 X되는거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셨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현물 ETF 도입과 주요국의 규제안 도입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비트코인만큼은 금지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래도 알트코인들은 다 죽는거 아니냐고? 비트코인이 규제권에 편입되어 법정화폐와 교환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업비트에 BTC/KRW 페어 하나만 남게 되더라도 비트코인을 출금해 다른 체인으로 브릿징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갖고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인터넷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중국인들이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
크립토 전체에 동남풍이 불고 있다. 하단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이외에 필자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근거들도 덧붙여보고자 한다.
1) 온라인 네이티브 자산의 시대
이제 인류는 책상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것을 넘어서, 자동차를 컴퓨터로 만들고 컴퓨터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시대를 맞이했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이런 현상은 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심화되는 중이다.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가 쓰는 화폐와 자산도 전자화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신용카드 거부하지 말아 달라는 공익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현금 거부하지 말아 달라는 공익광고가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금융거래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과거 게임 아이템을 돈 주고 사는 것이 보편적으로 이해받지 못했던 시대가 있었듯, 얼마 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자산을 거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발행되고 온라인에서만 거래될 수 있는 ‘온라인 네이티브 자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잖아’와 같은 주장을 이전보다 보기 어려운 이유다.
2) 반세계화와 양극화
어쩔 수 없이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주제를 간단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분쟁, 대만의 긴장감 고조 등 뉴스를 조금만 챙겨본다면 이제 반세계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전체 생산 효율성과 자본 효율성을 저하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박과 자본의 파편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세계의 공장 중국 덕분에 누렸던 아름다운 디스인플레이션 시대, 어린 시절 배운 행복한 지구촌은 이제 끝났다.
반세계화가 국가 간의 갈등이라면 양극화는 국가를 초월한 사회 집단 간의 갈등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은 다들 진저리 칠 정도로 익숙할텐데,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그리스 총리가 Global South를 대표해 선진국들이 얼마나 오만한지를 저격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사건은 양극화가 한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세계적인 현상임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다. 사회적 양극화 이외에도 부의 양극화 역시 갈수록 심화되는 중인데, 이를 단순히 1%의 인구가 45%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실제 분포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불행이 증가하고 스스로를 부유하지 않다고 여기는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왜 뜬금없이 이런 우울하고 비관적인 얘기를 하냐면, 필자의 견해로는 앞서 언급한 요소들이 애석하게도 크립토의 대중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세계화는 국가 간 자금 이동이 어려워져 크립토 자산의 송금 편의성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중국처럼 닫힌 국가들의 국민들이 대체 자산으로 선택하는 경향성을 높일 것이다. 양극화는 사람들의 심리 성향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고, 부의 측면에서는 계층 상승을 위해 높은 변동성의 자산을 선호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의 밈코인 열풍이야말로 이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3) 규제로 인한 온체인과 오프체인의 양극화
상술했던 ‘규제 도입은 알트코인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앞으로 규제권에 편입된 오프체인 크립토 자산은 규제가 점차 강화될 것이다. 국내에서 시작된 높은 수준의 AML(자금세탁방지), KYC(고객확인제도)는 점차 해외 거래소에서도 요구되고 있고 그 수준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에 대한 바이낸스의 항복, 바이빗에 대한 각국 정부의 금지 정책 등은 특정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역외(off-shore) 거래소들이 점차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비단 거래소 규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NFT, 현물 ETF, 블록체인을 통합한 웹 서비스 등 법정화폐와 크립토 자산의 교환 창구(on/off ramp)가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적용될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들어선다면 지금 대다수의 메인넷에 구축된 웹3 생태계는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겠으나, 합법적이고 확실한 크립토 자산 교환 창구가 일반 대중에게 열리는 것이기에 결국에는 온체인 생태계의 유동성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즉, 규제의 강화는 디파이로 대표되는 온체인 생태계와 거래소로 대표되는 오프체인 생태계 간의 간극을 넓히나, 하나의 자산군으로 인정받아 전체 유동성 총량이 증가하면서 결국 온체인 생태계는 독자적인 형태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OKX 등의 주요 거래소가 자체 지갑과 네트워크에 힘쓰고 있는 것을 단순히 토큰을 발행하기 위해서라고 접근하는 것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4) 웹3 진입장벽 완화
거래소를 통해 표면적으로 크립토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골드 러시처럼 더 높은 변동성과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온체인 생태계로 온보딩될 수 있는 잠재적인 사용자들이다. 미국을 비롯한 바이낸스 사용이 금지된 국가의 국민들이 다양한 탈중앙화 선물 거래소(Perp DEX)를 대안으로 사용하고, 솔라나 밈코인을 트레이딩하기 위해 로빈후드나 코인베이스가 아니라 Phantom 개인 지갑 모바일 앱을 바로 설치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지갑 생성으로 대표되는 웹3의 진입장벽과 잦은 해킹 위협이다. 지갑 생성과 관리의 어려움, 빈번한 해킹사례는 크립토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마저 온체인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며, 이로 인해 전세계 거래소 이용자가 100명이라고 했을 때 온체인 사용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출금한 사람은 여전히 절반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온체인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1명이라도 더 많은 사용자의 온체인 온보딩을 위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나타나는 모습들은 매우 긍정적이다. 솔라나는 Saga 폰을 필두로 모바일 지원을 크게 강화하고 있으며, 이더리움 계열 역시 OKX 지갑과 코인베이스 지갑이 네트워크 파편화에 따른 UX 저하를 막기 위해 다양한 편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해킹 방지 측면에서도 개인 클라우드에 키를 암호화하여 저장하는 스마트 월렛들이 다수 등장했고, 스캠 링크를 판별해주는 익스텐션 서비스들의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더 이상 ‘메타마스크 만들기’ 같은 글은 주변에 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토스와 네이버페이를 사용하듯 온체인 기능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보고, 이로 인한 신규 유동성 유입의 기대효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너무 늦지 않았나?
동남풍이 부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비트코인이 이미 1년간 150% 이상 상승한 상황에서 시장이 너무 과열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이 전고점을 돌파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역시 ‘너무 늦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라는 전무후무한 호재와 함께 올 역사적인 강세장의 초입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어차피 여몽마냥 칠공분혈할 가능성이 높으니 나중에 필자를 너무 손가락질하지 않아줬으면 한다.
1) 개인 투자자 유입과 관심도
일반적으로 자산 가격 사이클의 고점은 시장에 관심이 없던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됐을 때라고 한다. ‘식당/길거리/지하철에서 코인 얘기가 들리면 팔아라’는 말을 많이들 들었을 것이다. 올해 초 원화 신고점 갱신 당시 주변에서 이런 걱정이 정말 많이 돌았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럴까?
먼저 가장 가까운 업비트 앱 랭킹부터 보자. 3월 20일 기준, 업비트의 구글 플레이스토어 랭킹은 전체 33위, 앱스토어 랭킹은 24위다. 작년에 비하면 격세지감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코인베이스 앱 랭킹은 어떨까? 같은 날, 코인베이스의 구글 플레이스토어 랭킹은 전체 435위, 앱스토어 랭킹은 228위다. 비트코인 신고점 갱신이 무색할 정도로 낮은 순위다.
웹사이트 트래픽도 한번 살펴보자. 업비트의 웹사이트 트래픽은 대한민국 124위로, 불법 만화 사이트인 뉴토끼보다도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인베이스는 미국 404위, 바이낸스는 글로벌 506위, 베트남에서는 184위다. similarweb에서 제공하는 트래픽 데이터는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히 있으니 구글 검색 트렌드도 한번 살펴보자. Bitcoin, Ethereum, Crypto, Cryptocurrency 다양한 검색어로 찾아봐도 2021년의 절반이거나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다.
여담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코인베이스의 미국 앱스토어 랭킹 1위를 찍는 시기와 비트코인의 사이클 최고점을 기록한 시기가 유사했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코인베이스가 앱스토어 1위를 기록하고 일주일 후, 비트코인 가격은 당시 사이클의 최고점을 경신했다. 2021년 5월 코인베이스는 다시 앱스토어 1위를 기록했고, 당시로부터 2주 전의 비트코인 가격은 21년 상반기까지의 최고점이었다. 2021년 10월 다시 한 번 코인베이스가 앱스토어 1위를 탈환했고, 2주 후 비트코인은 2021년 사이클의 최고점을 경신했다. 표본이 작지만 코인베이스의 앱스토어 1위는 ‘정말 탈 사람 다 탔다’의 시그널일 수도 있겠다.
다시 돌아와서, 이쯤 되면 뭔가 크립토 전체가 사람들에게 나쁜 걸로 단단히 낙인 찍혔거나,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만 하는 고인물 파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트코인 신고점인데도 이 정도의 관심만 끌고 있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인물들이 매수만 눌러서 가격이 상승한 것인지 이전 사이클과 거래대금을 비교해보자. 코인마켓캡의 거래대금 데이터는 스캠/허위 거래소가 많아 주요 거래소의 데이터만 노출하는 더블록의 데이터로 살펴봤다. 2024년 1분기의 월평균 거래대금은 $2T에 미치지 못하며 2021년 최고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따로 떼어놓고 봐도, 선물 거래대금을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는 누적 순유입 $11B 이상을 기록한 BTC 현물 ETF가 빠져있다. ETF를 포함하면 거래대금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 놀라운 사실은 위에서 다룬 더블록의 거래대금 데이터는 FTX의 과거 데이터가 모두 제외된 상태라는 것이다. 2021~2022년 2위 거래소였던 FTX의 거래대금이 반영되지 않은 데이터인데도 저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재미난 데이터가 많이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추천한다.
2) 반감기 사이클
비트코인의 4년 반감기 사이클은 다소 미신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가설이다. 비트코인의 채굴 보상(블록 보상)이 4년마다 절반으로 감소하는 것은 명백히 공급량이 감소하는 요인이나, 그것이 필연적으로 반감기 이후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가격의 상승은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배경에는 ‘비트코인은 공급량이 한정되어 있는 희귀 자산’이라는 시장 참여자 다수의 믿음과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이 어찌되었건 시장 참여자로서 이번에도 반감기 사이클로 인한 가격 상승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랙록이라는 국가권력급 기관의 등장으로 사상 최초로 비트코인의 반감기 이전에 전고점을 갱신하는 이변이 발생하긴 했지만, 2024년 이전 3번의 반감기 동안 비트코인의 가격은 변동성이 감소하면서도 계속해서 유사한 패턴을 나타냈다. 매 반감기 전후로 비트코인 가격은 약 20% 이상의 큰 하락을 겪었으나 이전 전고점 대비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전 사이클인 2021년 고점이 2017년 고점의 약 3배 이상이었으므로 시가총액 규모가 더욱 증가한 2024~2025년의 고점은 2021년의 최소 1.5~2배 가량으로 기대해볼 만하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전 사이클의 고점이 다음 사이클의 지지선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이다. 이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된다면 비트코인이 $60K를 크게 하회하는 하락을 겪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MVRV라는 고대의 지표를 살펴봐도 나름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MVRV(Market Value to Realized Value)는 전체 시가총액을 ‘각 비트코인이 마지막으로 움직인 시기의 가격을 바탕으로 계산한 시가총액’으로 나눈 지표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비트코인이 많을수록 지표가 높아지며, 이는 다시 말해 전체 시장 참여자의 미실현 수익을 추정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MVRV 지표 하나만으로 투자의 근거를 세우기는 어려우나, 상기한 데이터와 함께 봤을 때 아직 반감기 사이클의 고점에 다다랐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태다.
사실 위의 비트코인 가격보다 필자가 더욱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알트코인 시가총액이다. 필자는 전형적인 저자산 middle IQ이기에 비트코인보다 더 높은 변동성을 추구한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전체 크립토 자산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트코인의 급등으로 인해 전체 시가총액은 전고점에 근접한 $2.4T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전체 시가총액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다면 전고점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여전히 모든 코인이 오르는 PvE 환경의 대불장보다는 빈번하게 섹터 로테이션이 이루어지는 PvP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피날레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반감기 사이클은 표본이 지나치게 작고 정량적인 근거가 거의 없는 가설이다. ‘이러한 관점도 있구나’라는 측면에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3)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 그리고 NFT
조금 더 ‘리서쳐 스타일’로 근거를 대자면 진부하게도 스테이블코인 발행량과 디파이 TVL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은 크립토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봐도 전혀 과장이 아닌데 크립토 시장, 특히 알트코인 시장에 들어온 유동성을 대표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전체 발행량은 23년 10월 저점인 $120B에서 크게 반등한 $150B을 기록 중이며 2021년 고점 대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상태다. 참고로, 위에서 FTX가 빠졌듯 해당 데이터에서도 LUNA의 UST가 빠져 2021년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은 실제로는 더 높았다.
특기할만한 점은 USDT의 발행량이 크게 증가한 반면, USDC의 발행량은 여전히 2021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발 자금이 BTC ETF로 직접 흘러 들어갔거나 여전히 크립토에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겠다.
온체인 돈놀이에 예치된 총 자산 규모를 뜻하는 디파이 TVL은 21년 최고점이었던 $187B에 비해 절반 수준인 $94B에 불과하다. 23년 10월의 $38B에 비해서는 3배 가량 반등한 것이지만 여전히 이전 사이클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수치다. 특히 현 시점에서 상당수의 TVL이 ETH 유동화 스테이킹/리스테이킹 자금이라는 점은 아직 온체인 디파이를 통한 레버리지 효과, 소위 말하는 ‘풍차 돌리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디파이 TVL 뿐만 아니라 NFT 거래대금까지 함께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최근 이더리움의 주간 TVL 거래대금은 약 $200M, 솔라나의 주간 거래대금은 약 $90M로 2021년 $1B을 상회하는 거래대금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낮은 상태다. 한때 150 ETH 이상을 기록했던 대장 격 NFT 중 하나인 BAYC가 현재 15 ETH 언저리로 10토막이 난 것을 보면 침체의 끝은 어딜지 궁금할 지경이다. NFT 시장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아직 제2의 NFT 붐이 오지 않은 것일까?
참고로, 위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인 비트코인 현물 etf 수요로 인한 BTC 공급량 감소와 기관 자금 유입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블랙록을 비롯한 대형 금융 기관들이 주도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발행되었고, 추가로 이더리움 현물 ETF를 통과시키기 위해 물밑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산업 전체의 변곡점인 현물 ETF 통과의 영향이 이 정도로 끝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투자 여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하시길 바란다.
부록 - 관심 있는 섹터들
필자는 다양한 분야의 크립토 자산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하단의 섹터에 속하는 자산이 이번 사이클에서 타 섹터 대비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둘거라 기대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 상당한 가격 상승을 거둬서 실망할 수도 있으나, 필자는 꽤 이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이제야 발간하는 것이라 억울해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AI
: 탈중앙화 AI의 필요성 그리고 정당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AI의 발전을 체감하고 있고 그에 대한 익스포저를 원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너도 나도 AI를 통합해서 이 섹터에 해당하는 자산들의 대다수는 AI 밈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Meme
: 밈코인은 가장 저평가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자산군이다. 하지만 이해하거나 밸류에이션을 할 필요는 없다. 밈은 그 자체로 밈이고 인류가 단체로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는 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라는 것도 밈이고 부동산의 강남불패도 밈이다.Solana/Base Ecosystem
: 솔라나와 베이스를 같이 묶은 것에 의아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둘이야말로 가장 비슷한 성격을 지닌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둘 다 빠르고 저렴한 트랜잭션과 부드러운 모바일 지원(사가폰/파캐스터&프렌텍), 결제 및 송금(솔라나페이/코인베이스월렛) 등 사용자 경험 개선에 상당히 주력하고 있다. 이는 디파이나 웹3 게임 등에 집중하면서 사용자 경험 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타 메인넷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결국 사용자 경험이 좋아야 신규 유저가 빠르게 유입되고 리텐션이 높아진다. 괜히 솔라나와 베이스에서 밈코인이 폭발하고 유동성이 몰리는 것이 아니다.
Restaking
: 리스테이킹은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탑골공원 이더리움에 등장한 BTS 같은 존재다. 처음에는 재담보(rehypothecation)가 아니냐며 의심 받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에어드랍과 추가 수익을 뿌리는 아이겐레이어에게 점차 사랑에 빠지고 있다. 이미 이더리움 TVL 상위권은 아이겐레이어와 LRT 형제들이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다. 결국 이더리움의 돌파구는 리스테이킹 밖에 없다.
Perp DEX & Web3 Native Tools
: 둘 다 소외받고 있는 섹터지만 아직 온체인 생태계가 더 커질 룸이 많다고 생각해서 좋게 보고 있다. Perp DEX들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상당한 UX 개선을 이뤄냈고 규제를 회피하거나 더 높은 레버리지를 사용하고자 하는 명확한 수요층이 존재한다. dYdX와 Aevo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트들은 상당히 낮은 시가총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eb3 Native Tool은 BANANA, LOOT, TREE 등을 비롯한 웹3 네이티브한 툴들을 의미하는데, 마찬가지로 하드코어 DEX/디파이 유저라는 명확한 수요층이 존재하고 창출하는 매출이나 경쟁력에 비해 과도하게 시가총액이 낮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비트코인 NFT와 레이어2, Arweave, Ethena, Maker 등 위험 대비 기대 수익이 높은 프로젝트들을 다방면으로 관심 갖고 트래킹하고 있다. 특정 프로젝트나 섹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은 추후 다른 글을 통해 다뤄볼 계획이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필자의 트위터와 텔레그램 채널에서 다양한 소식을 더욱 빠르게 접해보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